조선의 시인의 추천詩

시

조선의 시인의 추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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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 작가





귀뚜라미 한철의 울음

                         박정선

예초기로 말끔히 베어진 잔디밭 위로
어스름이 내리면
어디서 타전해 오는지 서늘한 소란
머지않아 찬바람에 쫓겨
베란다 다육이 화분 밑동으로 숨어들어 밤새 가늘게 울 테지
배양토 포대 그늘진 틈새
길고 여린 더듬이 하나
인기척에 화들짝 움츠러든다
태고보다 아득한 어둠을 건너와 고작 한 철을 머물다 가면서도
제 갈 길밖에 모르는 겁 많은 미물
두 날개를 부벼
혼신의 울음을 벼려내지만
그 소리에 갇히는 것은 도리어 제 그림자뿐
알을 묻고 흙으로 스러질지언정
저 지극한 울음은 남아
어느 봄날 언 땅을 뚫을 새 생명을 흔들어 깨우리
날마다 성에처럼 차오르는 한기 속
마른 잎새처럼 부서지는 목소리
마지막 숨을 얹은 가을이 무심하게 저물어 간다
울음이 끝나는 자리에서
생명은 다음 계절의 목소리가 된다
죽은 것은 귀뚜라미가 아니고
자신만 알고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박정선 약력]
신정문학 시 부문 등단
시꽃피다 SNS 홍보부장



<시감상> -조선의 시인
이 시는 가을철 한 철을 치열하게 살다 가는 귀뚜라미의 생태를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의 유한하고 이기적인 삶을 성찰한 작품이다. 
시인은 예초기로 베어진 잔디밭과 베란다 화분 틈새를 배경으로 
귀뚜라미의 '지극한 울음'에 주목한다. 겁 많고 
가냘픈 미물에 불과한 귀뚜라미는 찬바람이 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온 힘을 다해 날개를 부비며 울어댄다. 
이 울음은 비록 당장은 제 그림자에 갇히는 쓸쓸한 소리처럼 보이지만, 
알을 묻고 흙으로 돌아간 뒤 다가올 봄날의 
새 생명을 깨우는 숭고한 생명력의 원천이 된다. 
마지막 구절에서 시선은 미물에서 인간으로 확장된다. 
날마다 차오르는 한기 속에서 목숨을 다해 울다 가는 귀뚜라미와 달리,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우리의 삶이야말로 진정 '죽어 있는 시간'이 아닌지 
매서운 질문을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수작(秀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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