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시인의 추천詩

조선의 시인의 추천詩

포랜컬쳐 0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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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인 작가


아침의 궤적

          윤정인

비가 내린 뒤 환해지는 것은 빛의 소관이다

허리가 꺾인 채
한나절도 제구실을 못 하는 서툰 장마의 몸짓이
간헐적으로 산골을 뒤흔들고
먹구름 같은 응어리만
소화되지 않은 채 속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수상한 기척에도 논을 둘러볼 길 없어
노심초사 방안의 안전지대를 서성이다가
결국 책상머리에 앉아
창밖의 동정만 물끄러미 살핀다

이른 새벽, 닭 홰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어미를 닮아가는 갓난 병아리만이
대를 이어 새벽을 깨우는 연습을 할 뿐

한풀 꺾인 구름 사이로
아직은 서툰 장마가 왔다 갔다 눈치만 살피고 있다

시곗바늘은 아직 여섯 시 반에 닿지 못했고
사방은 깊은 침묵으로 가득한데

빗방울 하나가 처마 끝에서 툭, 아침을 먼저 깨운다

나는 그 느린 시간의 궤적을 따라
오늘이라는 강을 조용히 건너간다



[윤정인 약력]
전남 강진 다산초당 아래서 태어남 
창작산맥 등단 
세계시문학상 본상 수상
포렌컬쳐 최우수상 수상 
세계시문학회 이사 
시꽃피다 이사 
문화예술포렌컬쳐 최우수상
김해예총 디카시 최우수상 
맑은눈의 쌀 대표 
『시집』 다산초당 가는 길


<詩감상> -조선의 시인
이 시는 장마철 농촌의 적막한 풍경 속에서 
자연의 거친 숨결과 마주한 인간의 초조한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논을 살피지 못하는 불안과 '소화되지 않은 응어리'는 
일상을 멈춰 세우지만, 화자는 그 답답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노련한 닭 대신 갓난 병아리가 새벽을 깨우는 미숙하지만 
싱그러운 생명력, 그리고 처마 끝의 빗방울 하나가 
툭 아침을 여는 순간은 깊은 울림을 준다. 
느린 시간의 궤적을 따라 오늘이라는 강을 묵묵히 건너가는 
화자의 뒷모습은, 삶의 무게를 피하지 않고 담담히 견뎌내는 
의연한 치유의 미덕을 깊이 있게 전해주는 명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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