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테마詩 * 곽재우 장군 사당에서/박선해
포랜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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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16:30
곽재우 장군 사당에서(원문)
박선해
사당에 들어서자 시간이 먼저 얇아진다
하나의 발자국마다
먼 시대의 숨결이 진동하며
문살 너머로 스며든 햇빛조차
조심스레 역사를 건드린다
창호지 한 겹 남겨둔 채
바람이 안쪽으로 접혀 들어온다
그 바람에는 전란의 재와 흙,
피로 이름을 적던 이들의 기도가 섞여 있다
여기서는 큰 말이 오래 머물지 못한다
세월은 이미 소리의 무게를 알고
함성은 산 아래에서 멈추며
칼의 냉기가 식은 뒤에도
그 자리는 여전히 직립해 있다
한때
피가 역사를 밀어 올리던 날들이 있었고
나라가 부서질 듯 기울던 밤마다
누군가는 침묵의 자세로
무너지는 하늘을 받쳐 들었다
사당 안에서는
영혼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깨어 있다
이름보다 먼저 닳는 것은 결심이었고
그 결심은 바위처럼
묵묵히 정신을 단련해 왔다
기둥 하나에도
검은 그을음과 땀의 결이 남아 있다
나무는 쓰러진 자의 무게를 기억하고
돌바닥은 무릎의 흔적으로 윤이 났다
산천은 여전히 조국의 맥을 숨기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 피처럼 붉은 흙이 깨어나고
바람이 일면 굳은 땅조차 몸을 일으킨다
여기서 지켜지는 것은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칼을 들지 않는 날에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텨온
긴 세월의 의지,
역사가 스스로를 다스리는 자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역사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침묵이 말을 건네고
그 침묵 속에서
사람은 다시 마음을 세운다
살아야 할 때보다
견뎌야 할 때가 더 길다는 것,
그 길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도
나라의 뿌리를 놓지 않은 자들의 숨결이
지금도 바람처럼 사당을 지난다
곽재우 장군 사당에서(축약)
박선해
사당에 들어서자
시간이 먼저 얇아진다
하나의 발자욱마다
먼 시대의 숨결이 진동하며
문살너머로 스며든 햇빛조차
조심스레 역사를 건드린다
창호지 한 겹 남겨둔 채
바람이 안쪽으로 접혀 들어온다
그 바람에는
전란의 재와 흙,
피로 이름을 적던 이들의
기도가 섞여있다
여기서는 큰 말이 오래 머물지 못한다
세월은 이미 소리의 무게를 알고
함성은 산 아래에서 멈추며
칼의 냉기가 식은 뒤에도
그 자리는 여전히 직립해 있다
한때
피가 역사를 밀어올리던 날들이 있었고
누군가는 침묵의 자세로
무너지는 하늘을 받쳐들었다
사당 안에서는
영혼이 가장 낮은 자세로 깨어있다
기둥하나에도
검은 그을음과 땀의 결이 남아있고
돌바닥은 무릎의 흔적으로 윤이 났다
신천은 여전히 조국의 맥을 숨기지 않는다
바람이 일면 땅조차 몸을 일으킨다
여기서 지켜지는 것은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역사도 스스로를 다스리는 자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역사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침묵이 말을 건네고
살아야 할 때보다
견뎌야 할 때가 더 길다는 것
바위처럼 묵묵히 정신을 단련해야 한다
그 고요한 시간속에도
조국의 숨결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