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인제대학교 * 김해한국학아카데미 * 가야유적답사詩 * 말이산에 묻힌 시간 - 詩 박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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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 20:39
말이산에 묻힌 시간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돌무지 위의 별을 읽으며
박선해
산이라 부르기엔
너무 많은 이름이 묻혀 있고
무덤이라 부르기엔
아직 끝나지 않은 숨들이 있다
풀은 먼저 자랐고
사람은 늦게 도착했다
돌을 얹고 흙을 덮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길었던 곳
여기서 죽음은
사라지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몸을 접고
말을 접고
권력과 무기를 접은 채
산의 형태로 남는 법을 택했다
나는 고분의 능선을 따라 걷는다
발아래 묻힌 왕들은
아직도 나라를 버리지 못했는지
밤마다 땅속에서
군사처럼 자세를 고친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곳은 아라가야의 무덤이라고
그러나 흙은
주인을 단정하지 않는다
죽은 자의 이름보다
살아 있는 발자국을 더 오래 기억한다
돌무지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역사는 늘
놀이터보다 한 발 늦게 온다
왕의 무덤 위에서
아이스크림이 녹고
사진이 찍힌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서야
이곳이 패배의 장소가 아니라는 걸 안다
망한 나라만이
이렇게 조용해질 수 있다는 것을
칼을 들고 서 있던 자들은
끝내 이기지 못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들만이
산이 되었다
밤이 되면
고분은 더 낮아진다
별들이 내려와
봉분 위에 앉는다
죽은 왕보다
별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그제야 알겠다
여기는 죽음을 기리는 곳이 아니라
끝내 지배하지 못한 것들이
함께 눕는 자리라는 것을
나는 돌아나오며
뒤를 한 번 더 본다
말이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오늘도
나라 하나를 조용히 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