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시인의 추천詩 * 감꽃에 숨은 열매/이영순

조선의 시인의 추천詩 * 감꽃에 숨은 열매/이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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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순 작가




감꽃에 숨은 열매


                   이영순


감꽃 지고 가지 끝에
푸른 감 하나 매달렸을 때
사람들은 서둘러 가을을 말했지만
나는 사라진 꽃의 행방을 물었다

꽃은 어디로도 떠나지 않았다
둥근 몸속으로 가만히 숨어들어
붉게 익어갈 시간을
천천히 기르고 있었을 뿐

사람들이 눈부신 열매를 바라볼 때
나는 지워진 꽃잎의 흔적을 보았고
그들이 화려한 웃음소리를 들을 때
나는 그 뒤에 고인 침묵을 들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
우리 생에 스쳐 간 수많은 인연 또한
다른 이름으로 익어가는 열매인 것을
떨어진 감 하나를 조용히 줍다가
꽃이 툭
땅에 닿는 깊은 소리를 들었다


<이영순 약력>
시꽃피다 신인문학상. 전주 회원


[詩감상] 조선의 시인
사람들은 푸른 감을 보며 가을이라는 결과(열매)를 서둘러 말하지만, 
시인은 사라진 꽃잎의 흔적과 그 뒤에 고인 침묵에 주목한다. 
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열매의 둥근 몸속으로 숨어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묵묵히 익혀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통찰은 인간의 '인연'으로 확장된다. 
헤어짐이나 상실처럼 눈앞에서 사라진 인연 역시 아주 없어진 게 아니라, 
다른 이름과 형태로 우리 삶 속에서 성숙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떨어진 감을 주우며 꽃이 땅에 닿는 소리를 듣는 마지막 반전은, 
과거의 헌신과 보이지 않는 존재의 가치를 알아채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생의 깨달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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