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곤 시인의 시적 사유

이형곤 시인의 시적 사유

소하 0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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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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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燃獄)에서


            이형곤


제 그림자 밟고 서서

미동도 않고 밤을 새우는

요양 병원 앞 가로등,

오늘은 또

어느 서러운 영혼을 영접하고

배웅하려고 불 밝히고 섰는가


요양 병원엔 희망이란 없다

치열했던 삶의 그루터기들이

의래란 미명 아래 방치되는 곳

이며

녹슨 훈장의 투사들이

시간표 없는 간이역에서

영면 행 열차를 무작정 기다리다 황망하게 떠나가는

꿈이 없는 대합실이다

마음속 깊이 간직해 오던

첫사랑 그 사람도 이젠 어쩔 수

없이 나처럼 늙고 병들 거라는 허무한 위안만이 웅크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몽사몽간에 들려오는 당직

간호사 점호 소리조차

저승사자 호명 소리 같고

병원 옆을 지나가는 기관차 진동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승의 막을 내리는 소리처럼

섬뜩하게 들려온다

초점 흐린 눈으로 내다보는

창밖 세상,

아등바등 살아온 내 삶이 저곳

이었다면 긍정도 부정도 존재

하지 않는 이곳은 어딘가

말로 만 듣던 이승과 저승 사이

연옥이 여기인가

세월의 옷소매 잡고 통곡하고

싶은 밤

인간을 만든 신이 원죄라고

삿대질 해대고 싶은 밤

본능으로만 반응하고 울부짖는 맨발의 전사들

연옥엔 눈 씻고 봐도

낭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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