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동행 * 포랜컬쳐 이 달의 수필 * 볏짚 - 이서현 작가
볏짚
이서현
소먹이로 쓰려는 볏짚이 추수가 끝난 논에 둥그렇게 말아져 있다. 볏짚은 알알이 매달고 있던 벼라는 보석을 다 내어주고 몸체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가을의 대명사다. 들녘을 황금빛으로 수놓았던 한때의 전성기가 볏짚과 함께 적막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추수가 끝난 논은 이제서야 무더위와 땡볕을 달려온 한숨을 내려놓고 오후의 바닥에 앉아 쉬고 있다. 오후의 바닥 위로 노을 한줌 내려앉는다. 그 곁으로 날아든 새들이 해 질 녘의 발자국을 찍으며 가을을 콕콕 찍어 먹고 있다. 새들의 발목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하나둘 다가와 노래하고 있다.
유년 시절, 내가 살던 고향은 동화와 같은 곳이었다. 마을 뒤로는 월출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아늑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우리집은 마을의 잿등이라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동네의 다른 7가구와 함께 가족 같이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계절이 변화할 때마다 금수강산의 모든 면모를 두루 갖춘 아름다운 곳이었다. 층층이 다랭이 논과 밭이랑이 그림처럼 채색되어 있던 곳이었다. 다랭이 논은 서랍을 열어놓은 듯 늘 열려져 있어 봄에는 연둣빛이 들어 있었고 가을에는 황금빛이 가득 차올랐다. 까치와 백로와 개구리가 열린 서랍을 드나들며 배를 채웠고 함박눈은 서랍을 닫을 수 없을 만큼 내리곤 했다. 그 서랍에서 우리 가족의 세끼가 나왔고 내일을 살아낼 희망이 나왔다.
해 질 무렵이면 지붕 위로 올라온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 올라왔다. 굴뚝은 어머니의 신념을 이어받았는지 끼니때마다 연기를 공중으로 올려보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아궁이의 정신과 죽어가는 불씨를 살리는 부지깽이의 간절함을 모두 모아 굴뚝은 위로 위로 마음을 모았다. 그때쯤이면 동네 어디에선가 놀고 있는 아이들을 큰소리로 불러대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마이크처럼 여기저기서 들렸다. 지금은 휴대폰이 있어 둘만의 대화로 모든 게 해결되지만 그 시절은 목소리 하나가 확성기가 되었다. 때로는 소곤소곤 귓속말도 되었다 하는 무선 마이크였다.
가을이 되어 탈곡을 한 볏짚은 한 뭉치씩 묶인 후, 축축함을 없애려고 마을 앞 터에 줄줄이 세워서 말렸다. 그렇게 세워진 볏짚 사이에서 보름달이 뜨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숨바꼭질을 하며 놀곤 했다. 보름달은 술래가 숨어 있는 아이들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달빛을 내려보내 주었다. 숨어 있는 곳을 들키지 않으려고 아이들은 밤의 뒷주머니 같은 볏짚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별들이 어느 편을 들까 망설이다가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때도 볏짚은 소먹이었고 지금도 소먹이로 쓰인다. 다만, 유년의 볏짚은 동네 아이들과 친구되어 함께 웃고 놀았던 추억이 있어 따스하지만 지금의 볏짚은 차디찬 들판에 칭칭 감겨져 외롭게 나뒹군다. 자유 속에 부자유일까 부자유 속에 자유일까, 궁금하지만 유년의 볏짚에는 낭만과 온기가 있었다.
오늘따라 아이들과 함께 유년의 보름달도 희디흰 발걸음으로 숨바꼭질을 했던 그 볏짚이 그립다. 창밖으로 보름달이 떠오른다. 동네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볏짚에 몸을 숨겼던 그 달빛이 숨바꼭질을 하는지 내 방으로 들어와 몸을 숨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