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동행 * 제2회 포랜컬쳐 신춘문예 대상(수필 부문) 당선작 * 치유의 강/박덕은

수필, 소설

문화예술 동행 * 제2회 포랜컬쳐 신춘문예 대상(수필 부문) 당선작 * 치유의 강/박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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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은 작가


치유의 강

         박덕은

들여다보면 거기 어른거리는 아픔 하나, 제 몸의 신열들을 물결로 음각하며 흐르고 있다. 비 오는 날에 울음 웅얼웅얼 쌓여 저물어 가도 언젠가는 반짝이는 마지막 윤슬로 남고 싶기에. 실망하고 상처 받아 어딘가로 숨어 버리고 싶을 때도 묵묵히 어제처럼 발걸음을 옮길 필요가 있다. 태백의 황지 연못에서 출발한 낙동강은 힘들더라도 한 걸음 더 내디디면서 쉼 없이 흐른다. 그로 인해 1,300여 리의 대서사시 같은 물길을 완성하고 을숙도의 철새들까지 품는다.

추진하고 있는 일을 진행시키는 도중에 다툼이 생겼다. 얼굴을 붉히며 서로의 언성이 높아졌다. 의견이 달라 충돌할 수는 있지만 뒷말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공격성이 강한 뒷말에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태연한 척 넘어가지 못하고 가슴을 몇 번이고 쓸어내리는 낮과 밤의 그늘이 쌓여 갔다.

자식들이 결혼을 다 하고 나면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싶었다. 혼자 살기 때문에 하던 일만 정리하면 되었다. 바닷가 근처에서 세상과 단절한 채 살고 싶었는데 그것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낙동강으로 여행을 떠났다. 30여 년 전에 사업이 부도가 나서 힘들 때도 낙동강을 찾았었다. 십여 일을 낙동강에 머물면서 마음을 추스렸었던 추억이 다시 낙동강을 찾게 했다. 푸른빛의 강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 낙동강의 심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푸른빛은 어떤 난관이 닥쳐와도 끝까지 흘러가겠다는 뚝심 같은 것. 가뭄으로 자식 같은 여울물이 굶어 죽은 밤에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기 위해 낙동강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환하게 강물을 두드리는 새소리도 눈물이었고 휘날리는 꽃잎도 끙끙 앓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낙동강은 수면 위까지 일렁이는 울음 소리를 그저 묵묵히 흐르는 것으로 다독인다. 상류의 아픈 몸을 다 추스리지 못한 채 하류로 접어들어도 어제처럼 담담히 흘러가는 것으로 또다시 다독인다. 울컥이는 감정들이 따스한 물의 몸으로 녹아들어 물결무늬가 될 때까지.

삼락 생태공원이 자리한 둔치로 발길을 옮긴다. 드문드문 보이는 버드나무가 강바람에 취한 듯 서 있어 목가적이다. 벤치에 삼삼오오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풍경이 되어도 좋을 만큼 아름답다. '맥도가시연꽃길'로 향한다. 저 멀리 을숙도가 보인다. 가슴 따뜻한 강물에 안긴 을숙도는 할머니 품에 안긴 어린 손주처럼 평화로워 보인다. 곤한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 켜는 철새들이 옹알이하듯 날아오른다. 낙동강은 철새들이 목마르지 않게 지고 온 강물을 한 동이씩 부리고 있다. 재롱부리듯 갈대숲 뛰어넘는 철새들을 바라보며 웃는 낙동강의 물살이 할머니의 주름살처럼 친근하다.

사람의 나이에 견주어 본다면 낙동강의 시작인 태백의 황지 연못은 청소년기라 할 수 있다. 출생의 비밀 같은 5,000톤의 용천수가 미래의 꿈처럼 날마다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그 야무진 꿈이 봉화군의 기암절벽을 용감하게 휘감으며 흘러간다. 중년기라고 할 수 있는 대구 분지의 낙동강 중류를 거쳐 을숙도가 있는 낙동강 하류를 향해 나아간다. 어찌 보면 낙동강 하류는 노년기에 해당한다. 꽁꽁 어는 혹한기에도 낙동강 하류는 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덕분에 저 멀리서 철새들이 찾아온다. 마치 겨울방학을 이용해 할머니집에 놀러오는 아이들처럼. 낙동강은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물고기만 내 핏줄이라고 고집하지 않는다. 붉은부리갈매기, 고니 같은 철새들도 모두 낙동강의 핏줄이라고 여긴다. 그런 넉넉한 품이 있기에 철새들은 해마다 찾아온다.

나는 낙동강처럼 품이 넉넉하지 않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품기에는 마음의 그릇이 작다. 낙동강은 그런 나에게 마음을 넓혀 상대방을 품으라고 말하고 있는 듯 유유히 흐르고 있다. 어렸을 적에 우리 동네에 사는 한 할머니는 친손주가 아닌데도 아이들이 놀다가 배가 고파하면 옥수수나 찐 고구마 등을 주면서 먹으라곤 했다. 할머니는 우리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며 흐뭇해 했다. 그런 할머니가 좋아 우리는 곧잘 할머니에게 가곤 했다.

나도 이제 철새를 품은 낙동강 같은, 할머니의 그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자신의 핏줄이 아니더라도 품어 주는 낙동강처럼 나이 들어가라고 말하고 있는 듯 강물에 햇살 어린 물결무늬가 가득하다. 수면에 비친 구름의 맨발이 윤슬에 반짝인다. 구름도 낙동강을 닮아 쉼 없이 흘러왔는지 발이 부어 있다. 그 부은 발을 낙동강은 윤슬로 찜질해 준다. 낙동강은 하늘까지 품어 주고 있는 것일까.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게 힘들어서 낙동강이 은둔의 집 같은 저수지로 숨어들었다면, 우리는 이 아름다운 낙동강 하구를 결코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폭우로 범람한 강물이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낙동강은 '흐름'이라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뒷말이 무성한 태풍이 몰아쳐도 '흐름'이라는 걸음을 한 번 더 내디디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다리만 건너면 을숙도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로 길은 생기가 넘친다. 저 사람들도 울컥이는 아픔들을 낙동강에 기대어 위로받으며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낙동강을 따라 걷다 보니 소란했던 속내가 고요해진다. 때로는 보폭을 줄이고 걸음 속도를 늦추더라도 흐름을 멈추지 않았던 낙동강처럼 나도 이제는 묵묵히 흘러갈 것이다. 푸른 강물 위로 철새 한 마리가 수면을 두드리듯 스치며 날아오른다. 그 짧은 순간에 낙동강은 무슨 당부의 말을 건네는지 강물의 둥근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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