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행복한 서평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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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식의 행복한 서평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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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민병식

빙허 현진건(1900-1943) 선생은 1920년 '개벽'지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고, 1921년 발표한 '빈처(貧妻)'로 인정을 받기 시작 '백조(白潮)'동인으로서 '운수 좋은 날', '불 등을 발표함으로써 사실주의의 선구자로 불린다. 또한, 당대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조기에 일본유학을 다녀왔지만, 드물게 친일에 가담하지 않은 몇안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작품은 192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그 당시 인력거를 끌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던 김 첨지의 이야기로,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하층민의 힘든 삶이 잘 그려져 있는 1924년 발표된 사실주의 소설이다.

눈은 아니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 인력거꾼 김첨지는 일을 나간다. 며칠동안 허탕을 쳐 조밥도 못먹었고 아내는 아픈 지 오래지만 병원에 가지도 못했다. 아이도 있다. 열흘 전 조밥을 먹고 체해 더 안좋아진 아내는 오늘은 일하러 가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굶을 수는 없으니 날이 고약하고 아내가 만류해도 일을 나가는데 연달아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아침부터 손님을 둘이나 태워 80전을 번 김첨지는 며칠 전부터 앓아 누운 아내에게 그렇게도 원하던 설렁탕을 사 줄 수 있으리라 기뻐한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는 학생 손님까지 만나는 엄청난 행운에 신나게 인력거를 끌면서도 아픈 아내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그는 손님 하나를 흥정하여 또 한 차례 벌이를 해 총 3원을 번다. 집에 들어가려다 친구 치심을 만나 길가 선술집에 들른다. 얼큰하게 술이 오르자 김첨지는 아내에 대한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술 주정을 하면서 미친 듯이 울고 웃는다.

김첨지가 설렁탕을 사들고 집에 들어간다. 무서운 정적이 감도는 집에서 김첨지는 움직임 없는 아내를 발로 찬다. 반응이 없자 그제야 아내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하며 죽은 이의 얼굴을 자기 얼굴을 비빈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인 김 첨지의 하루는 반어적 그 자체이다. 김첨지의 아내는 못 먹어서 생긴 병을 앓고 있었는데 최근 며칠 동안은 먹어서 병이 생겨서 심각한 상태이다. 또한 평소라면 하루 종일 공치는게 드물지 않은데 이날 따라 운이 잘 풀려서 손님이 계속 이어진다. 집에 들아가서 아내를 돌봐야 했을 김 첨지 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운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계속 일한다. 돈이 계속 들어올 수록 귀가는 늦어지고 아내는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김첨지에게 있어서 행복은 분명 아내의 건강회복 이겠지만 그날 하루의 운이 좋아질 수록 김첨지의 궁극적인 행복은 멀어져 간다. 겉으로 드러난 운이 좋아질 수록 김첨지의 진정한 운은 나빠지는 셈이다. 한없이 운수가 좋은 날, 김첨지는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왔지만 아내는 죽었고 국물 한 방울도 먹지 못했다. 운수 좋은 날이 운수 나쁜 날로 바뀌는 반어적 구조로 당대 민중들의 비참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

가족을 제대로 돌볼 수 없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나가야 하는 상황은 지금도 주위에 흔하다. 집에 아픈 환자가 있어도, 거동 못하는 부모가 있어도, 집에다 홀로 두면 밥이라도 스스로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있을까 의심될 정도로 어린 아이가 있어도 나가서 일을 하지 않으면 그들을 부양할 수가 없는 조건에 '운수 좋은 날'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있으며, 이 작품이 발표된 1924년으로부터 거의 백 년이 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 첨지는 생계 위기 때문에 생사의 불안 속에 살아가는 하층민 이다. 작품 속 인물의 행동과 대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아내를 향한 김 첨지의 폭력적이고 비 이성적인 태도에 주목할 것은 아니다. 김 첨지의 삶이 막다를 골목에 내몰렸음을 이해하고 내면의 아픔을 바라봐야 한다. 지금 하루하루 연명하는 비루한 삶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많다는 것을 직시하고 희망도 없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나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과연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내놓을 것 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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