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눈썹/박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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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 (巨詩記)-눈썹/박 준

GOYA 0 22
♡눈썹/박 준

엄마는 한동안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빛이 잘 안 드는 날에도
이마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매었다

봄날 아침
일찍 수색에 나가
목욕도 오래 하고

화교 주방장이
새로 왔다는 반점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연히 들른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한 것이 탈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있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박준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中에서

♡시를 들여다 보다가

  저절로 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시다.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
나는 일중의 하나라서 그럴까?아버지의 권위가 시퍼렇게 살아
숨을 쉬고 있던 그 때에도 어무이의 미(美)에 대한 갈망은
뒤집혀지는 밥상과 바꾸어도 좋을만큼 위력이 있었다.아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실 다를게 없을지도 모른다.오히려 지금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것같은 느낌적인 느낌?몇 해전에
내 사무실에 거래처의 직원이 요상한 상태로 찾아와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분명 이 친구 아는 얼굴인데 자꾸만 낯이 설게
느껴지는 거였다.왜? 왜일까? 그건 바로 시커멓게 변한 짱구눈썹때문이었다.평소에 흐릿한 눈썹탓에 자신감이 없었던
그가 굵직한 눈썹문신으로 과도한(?)결행을 하고 나타난 것이었다.그렇다.이젠 눈썹문신이 동네 아주머니나 할머니의
전유물이 아니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우리모두의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참 그건 그렇고 우리네 아버님들은 왜 걸핏하면 밥상을 뒤집어 엎으시는 고강도 불안요소들을 간직하고 계셨던 걸까?
아버지의 이러한 액션들은 어린 누나와 나를 노루마냥 방방 뛰게 만들만큼 공포 그 자체였겠다.그렇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먹을 것이 귀하디 귀한 그 시절에 배고픔을 겨우 면할 몇 안되는
기회를 아버지의 액션 한 번에 날아가버린 상황.쪼르륵 소리는
한동안 더 이어졌을 터이고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아버지의 분노는 어린 누나와 나를 이리저리 뛰게 만들었을 것이다.
  요즘 주변의 엄마들의 눈썹은 다들 젊다.센머리도 없다.
굳이 창피해서 수건으로 가리고 다니는 엄마들도 없다.되레
멀쩡한 얼굴이 상할까봐 칭칭 동여매고 다니는 엄마들이다.
자연적으로 지리산운운하며 솔찬히 뒤집어 엎던 밥상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그렇게 귀한 밥상을 발로 차서 뒤집을 수
있는 아버지나 남정네가 지금 만약 보이기라도 한다면....
서두를 일이다.모두들 몰려가서 한마디 해줘야 한다.
<혹시 지금 간이 배 밖으로 나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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