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해 시인의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1 * 서평 - 박덕은 문학박사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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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해 시인의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1 * 서평 - 박덕은 문학박사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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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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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해 시인은 강원도 태백에서 아버지 이동영 씨와 어머니 허옥순 씨 사이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1962년에 태어났다. 
 1988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취미로는 음악 감상, 여행, 독서 등이다.
 사람의 외면보다 아름다운 내면을 더 중요시하고, 문학을 하면서 희로애락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 시조를 창작하고 있다. 
 현재, 국제펜 회원, 경기펜 총무국장, 경기문협, 문학과비평 사무차장, 수원문협 회원, 토지문학 회원, 
남명문학회 부회장, 신정문학 회원 등으로 문단 활동을 하고 있다.
 수상으로는 경기문학인협회 공로상수상, 강원경제신문 누리달 대상, 산해정 인성문화 진흥회 기개상 수상, 
수원 인문학 공모 최우수상, 문학과비평 작품상,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제1회 애지중지행시짓기 대상, 
남명문화제 시서화초대전, 제1회 문화의전당 시화전 작품상 수상 등이 있다. 

 저서로는 [레스피아에서 선녀를 만나다], [한국을 빛낸 명시선집](공저) 등이 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이승해 시인의 시 세계를 탐험해 보기로 하자. 

우리 집 누렁이는 똥을 먹어서인지
누런 털이 수북하다
안동 장날 주인 남자의 눈에 들어서
화성 용두리까지 팔려왔다 
 
쓰려져 가는 기와집 축대
앞에 머리를 꼬고 엎드려
제 집인지 남의 집인지 모르고
낮잠을 즐기던 누렁이 
 
이쁘다고 목덜미를 쓰다듬으면
주인의 발밑에 비스듬히 누워
발바닥을 핥기도 했다 
 
어른들 똥을 주면 먹지 않고
아가 똥만 먹었다 그래서인지
아기똥만 바라보면 늘 노랗게 웃는다 
 
어느 날 부자집에서 얻어 온 비계덩어리를 
억지로 먹였더니 설사를 하면서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식어 버린 누렁이 시체 위에  
나비 한 마리 날아들어 나폴 나폴 춤을 추고 
 
주인은 눈물을 찔끔이며
아가똥을 먹게 그냥 둘 걸
하늘 보며 한탄했다 
 
누렁이가 먹던 밥그릇에
아가똥 냄새만 그득했다. 
   - [똥개]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자신이 키우던 똥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첫 행부터 눈길을 끄는 게 있다. 똥이 개의 누런 털로 환치된다. 무생물이 생물로, 더럽고 부정적인 똥이 사랑스런 개의 털로 환치된 것이다. 동화작가 권정생의 <강아지똥>이 떠오른다. 똥 중에서도 아가 똥만 먹는다고 한다. 세상의 욕심이 들어있지 않는, 순수하고 맑은 똥만 먹는다. 그래서일까, '아기똥만 바라보면 늘 노랗게 웃는'다. 이 지점에서 따스한 감성이 스며든다. 똥개를 통해 맑은 영혼의 감성을 말하고 있다. '축대/ 앞에 머리를 꼬고 엎드려/ 제 집인지 남의 집인지 모르고/ 낮잠을 즐기던 누렁이'에서 천진난만한 아기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주인의 발밑에 비스듬히 누워/ 발바닥을 핥기도 했다'에서도 사랑스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러던 어느 날, 시적 화자는 얻어 온 비계를 한 덩이나 억지로 먹였다. 왜 억지로 먹였을까. 비계를 먹으면 살이 찔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으니 비계라도 먹어서 목청을 키우라고, 그 목청으로 쓰러져 가는 기와집을 지키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을까. 주인의 욕심이 끼어들기 전에는 낮잠을 즐기며 살았는데 주인의 욕심이 끼어들면서 운명이 뒤바뀐다. 눈물을 글썽이며 후회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아가똥을 먹게 그냥 둘 걸/ 하늘 보며 한탄'한다. 주인은 자신의 욕심을 탓한다. '누렁이가 먹던 밥그릇에/ 아가똥 냄새만 그득'하다에서 어떤 깨달음이 느껴진다. 다시는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말자, 있는 그대로 타자의 삶을 존중하자, 그런 말을 자신에게 하고 있는 듯하다. 스토리가 있는 시라서, 눈길이 쏠린다. 인생의 흐름이 담겨 있는 듯하여, 가슴이 아린다. 인생사가 느껴져, 묵묵히 숨을 쉬게 된다. 다채로운 감성으로 이끄는 시의 특질을 만난 듯하여,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미지로 그려논 스토리에서 감칠맛이 난다.

아무도 모르게 겨울이 찾아왔다
문 두드리는 소리도 없이
그저 바람에 실려와
내 창가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새벽 공기는 어제보다 차갑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깊숙이
하얀 냉기가 스며든다
모래처럼 부서질 듯한 공기 속에서
나는 겨울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어느 순간부터 귀퉁이에 멈춰 서 있는 그림자들
가로등 불빛 아래서 반짝이다 얼어붙은 나뭇잎들
그 모든 풍경이 말없이 인사를 건넨다

"왔어요 올해도" 
 
그 인사는 낯설지 않다
언제나처럼
겨울은 늘 이렇게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옷깃을 여미는 손끝에서 계절이 느껴지고
커피향에서 피어나는 하얀 김 사이로
누군가의 생각이 따라 올라온다 
 
그리움은 이상하게도 겨울을 좋아한다
볼 수 없어 더 간절하고
닿을 수 없어 더 따뜻한 것들이
이 계절엔 유난히 또렷하다 
 
겨울은 단지 차갑고 하얀 계절이 아니다
그건 오래된 기억을 닦아 불빛처럼 다시
꺼내주는 계절 
 
어느 날 문득
너의 이름 석 자가 눈송이. 
   - [몰래 온 손님]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어느 날 새벽 눈꽃송이를 맞이한다. 겨울만큼 그리움이 사무치는 계절이 어디 또 있을까. 옷깃을 세우게 만드는 눈보라의 질투 때문일까, 귀가를 서두르게 하는 어스름녘의 자세 때문일까, 남루한 냉기와 찬바람의 억지 때문일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따뜻한 그리움의 아랫목으로 들어서고 싶은 건 분명하다. 시적 화자는 문 두드리는 소리도 없이 창가에 조용히 겨울이 내려앉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겨울이 찾아온 그날의 새벽 공기는 어제보다 차갑고 하얀 냉기가 스며든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어떤 쓸쓸함과 허전함이 엿보인다. 이때 시적 화자는 '모래처럼 부서질 듯한 공기 속에서/ 나는 겨울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상상 속으로, 행복한 감성 속으로, 아름다운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만난 풍경들이 말없이 인사를 건넨다. 시의 흐름과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좋다. 독자의 감성을 끌고 가는 힘이 느껴진다. 그 힘에 의지해 계속 따라가 보자. 시적 화자는 낯설지 않는 인사 속에서 커피향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누군가 떠오른다. 이를 통해 화자는 '그리움은 겨울을 좋아한다'고 단정짓는다. 그 이유는 '볼 수 없어 더 간절하고/ 닿을 수 없어 더 따뜻한 것들이/ 이 계절엔 유난히 또렷하'다고 말한다. 누구를 보고 싶다는 뜻일까, 무엇에게 가 닿고 싶다는 뜻일까. 화자는 누구와 무엇에 대해 정확히 지칭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상상의 폭이 더 넓다. 다시 한 번 겨울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린다. '오래된 기억을 닦아 불빛처럼 다시/ 꺼내주는 계절'이 겨울이라고. 이 문장을 곱십어 볼수록 가슴에 와닿는다. 그리움을 향한 시적 화자의 목소리가 절정으로 치달아 '어느 날 문득/ 너의 이름 석 자가 눈송이'라고 끝맺음을 맺는다. 화룡점정이다. 
 문 두드리는 소리도 없이 바람에 실려와 창가에 내려앉은 눈꽃송이, 겨울 발자국 따라 찾아온 하얀 냉기, 옷깃 여미는 손끝, 모래처럼 부서질 듯한 공기, 누군가의 생각 따라 올라오는 하얀 김, 닿을 수 없어 더 따뜻한 것들, 오래된 기억을 닦아 불빛처럼 다시 꺼내주는 계절 등의 표현이 시적 형상화와 이미지 구현을 돕고 있다. 선명한 이미지와 여린 감성이 만나, 시심의 여행을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자연스런 시적 형상화가 시의 특질을 감싸 안고 있다.

바람 따라 흔들린다
결국 땅 위에 조용히 내려앉은
나뭇잎 한 장 
 
누군가의 마음처럼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문장을 품고
나는 그걸 가만히 주워 읽는다 
 
"잘지내니"
"그리웠어"
"잊지 않았어" 
 
말대신 색으로 전해지는 안부
빨갛게 물든 그리움과
노랗게 바랜 추억의 흔적이
손끝을 간질인다 
 
가을은 그렇게
나뭇잎 하나에도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편지를 띄운다 
 
낙엽이 흩날리는 소리는
누군가의 오래된 속삭임 같고
인맥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지나간 계절의 마지막 손인사 같다 
 
나는 오늘도
그 짧은 편지들을 주워 읽으며
조금은 천천히
조금은 조용히
가을을 건넌다. 
  - [나뭇잎 편지]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바람 따라 흔들리다 땅에 떨어진 나뭇잎 한 장을 줍는다. 그 나뭇잎에는 다정한 낙차(落差)가 숨어 있다. 낙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밝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찌 보면 나뭇잎은 가을의 낙엽으로 지고 싶어 초록으로 환한 여름을 건너왔는지도 모른다. 몇몇 아쉬움과 미련이 가을의 끝자락을 붙들고도 있겠지만 빨갛게 물든 그리움과 안부를 나뭇잎은 건넨다. 그래서일까, 나뭇잎들의 낙차는 다정하다. 낙엽이 허공에서 그리는 가벼운 곡선이 즐겁다. 색으로 전하는 안부가 곡선으로 표현되서일까. 낙엽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시선이 따스하다.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문장을 품고/ 나는 그걸 가만히 주워 읽는'다. 무슨 글이 써 있길래 읽는다고 말한 것일까. 시적 화자는 먼저 따뜻한 문장을 품고 낙엽을 읽는다. 시인의 자세는 이처럼 따스해야 한다. 따스한 시선, 따스한 관점, 따스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낙엽에서 안부와 그리움을 만난다. '노랗게 바랜 추억의 흔적이/ 손끝을 간질인'다. 추억의 흔적은 발랄한 유년의 기억 그 언저리일 수도 있고 뜨거운 첫사랑의 뒷모습일 수도 있고 어떤 열정일 수도 있다. 그 추억들이 심장과 손끝을 간질인다. 잘살고 있냐고 묻는 듯 낙엽은 제 몸을 허공에 한 잎 한 잎 쌓으며 우리에게 질문한다. 또 '낙엽이 흩날리는 소리는/ 누군가의 오래된 속삭임 같'다고 한다. 참으로 달달한 감성으로 다가오는 낙엽이다. 이렇게 화자는 낙엽을, 아니 짧은 편지를 읽으며 가을을 건너고 있다.
 낙엽 한 장, 거기서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문장을 읽는다. 말 대신 색으로 전해지는 안부, 빨갛게 물든 그리움, 노랗게 바랜 추억의 흔적 등을 읽는다. 나뭇잎 하나에도 마음을 담아 편지를 띄우는 가을, 누군가의 속삭임 같은 낙엽의 소리, 계절의 마지막 손인사, 이를 감지하며 계절을 읽어 가는 시적 화자, 나뭇잎의 짧은 편지를 주워 읽으며,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가을을 건너는 시적 화자, 그의 시선과 내면이 시의 세계로 소롯이 이끌고 있다. 시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잔등을 밟고 오르는 숨소리마저 감추고
세상살이 힘들다고 아우성치던 시간들이
고양이 걸음으로 숨어든다 
 
그 남자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는
계단은 굽은 등을 세우지 못하고
발을 내밀 때마다 삐걱거린다 
 
술 취한 이웃 남자가 문 앞에 속을 토하고
태연하게 자릴 떠날 때까지
비릿한 생선 내장 냄새가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창틈 새로 아침을 깨우는 바람 소리에
눈을 뜰 때면
시멘트 틈바구니로 초록빛이 돋는다 
 
낡고 허물어진 계단을 딛고
낯선 희망의 꿈을 찾아 문을 나선다. 
     - [계단] 전문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낡고 허물어진 계단을 자신의 인생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계단은 상승의 이미지도 있지만 하강의 이미지도 있다. 누구는 계단을 오르며 성공으로, 출세로, 희망으로 나아가고 또 누구는 계단을 내려오며 절망으로, 비관으로, 우울로 들어선다. 그런 면에서 계단은 생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적나라한 생의 유전자를 드러내고 있다. 상승의 의지가 내 마음대로 실현되어 꿈꾸는 삶으로 나아가면 좋을 텐데 인생이란 그렇지가 않다. 올라가야 하는 계단은 멀고 아니, 추락하는 계단은 눈앞에 있어 사는 게 버겁다. '잔등을 밟고 오르는 숨소리마저 감추고/ 세상살이 힘들다고 아우성치던 시간들이/ 고양이 걸음으로 숨어'들고 있다. 아픔이 느껴진다. 발랄한 아침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적막과 어둠에 휩싸여 가슴을 치는 서러움이 느껴진다. 상처의 목록을 펼쳐놓으면 저 층층의 계단을 넘어설 것이다. 아우성치는 시간들은 내성적이어서 고양이 걸음으로 숨어든 것일까. 무릎에 힘을 줘야 오를 수 있는 저 계단의 언저리에는 누군가의 망설임과 울음이 깃들어 있다. 그 울음이 고양이 걸음으로 숨어든다. 계단은 이제 남자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다. 굽은 등을 세우지도 못한다. 비좁고 어둑해서 아니, 멈출 줄 모르는 질주에 지쳐서 쉬고 싶은 것이다. 계단은 이제 발을 내밀 때마다 삐걱거린다. 삐걱거릴 때까지 끌고 온 생의 뒤안길이 울먹인다. 멈춤도 없이 숨차게 달린 어제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시적 화자는 그 마음을 '술 취한 이웃 남자가 문 앞에 속을 토하고/ 태연하게 자릴 떠날 때까지/ 비릿한 생선 내장 냄새가/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고 표현하고 있다. 숨차게 달린 삶에게 쉼을 줘야 한다. 더이상 비릿한 생선 냄새가 계단을 타고 내려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쉼을 가진 계단에서 어떤 설렘이 느껴진다. '시멘트 틈바구니로 초록빛이 돋는' 게 보인다. 초록빛에서 내일을 향한 기대가 엿보인다. 계단을 또 올라서야 하고 다시 주저앉아 울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다시 희망의 꿈을 찾아야 한다.
 계단에는 세상살이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시간들이 숨어든다. 계단은 남자의 무게 지탱하지 못하고 삐걱거린다. 비릿한 생선 내장 냄새가 흐르기도 한다. 계단의 시멘트 틈바구니로 초록빛이 돋는다. 아침이면, 낯선 희망의 꿈 찾는 발걸음이 지나간다. 치열한 현실인식이 자리잡고 앉아, 고된 인생길을 실감 있게 이미지로 그려놓고 있다. 되도록 주제를 노출시키지 않고, 절제의 미를 보여주는 시적 형상화가 시의 맛을 한층 높여 주고 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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